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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정수영 “자주 사용하는 사물은… 그 사람 내면 비추는 거울”

2025-05-30 HaiPress

정수영 개인전 ‘초대받고 싶지만…’


일상서 접한 흔한 사물 통해


타인 내면 가늠하는 작품들


팬트리 선반에 담긴 공산품


사람의 은밀한 욕망 말해줘


6월 28일까지 학고재에서

서울 종로구 갤러리 학고재에서 개인전 ‘초대 받고 싶지만 참석하고 싶진 않아요’를 여는 정수영 작가. [김유태 기자]

‘Waiting for Nobody’(180x180cm). [학고재 갤러리] 흰 테이블보에 올려진 사과,화병에 가만히 꽃힌 장미는 중세 정물화의 주된 오브제였다. 과일엔 풍요의 욕망이 깃들어 있었고 사랑과 순애보의 감정 역시 캔버스에 자주 어른거렸다. 그런데 수백 년 지난 오늘날,낡은 정물화를 현대적으로 변용한다면 화가의 붓끝엔 무엇이 남겨져야 할까?

정수영 작가는 이를 ‘치토스,오레오,제로슈가 코카콜라,발베니 25년산’ 등으로 답한다.

“한 사람이 일상에서 이용하는 사물은 그 사람을 말해주잖아요. 한 사람의 은밀한 속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물들을 그린 제 작품은 정물화이면서 초상화이기도 한,그 중간쯤인 것 같아요.”

개인전 ‘초대 받고 싶지만 참석하고 싶진 않아요’를 여는 정 작가를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만났다.

정 작가의 사물들이 놓인 배경은 정물화의 고전적 장소인 탁자가 아니다. 한국의 아파트 주방 옆에 설치된 흔한 ‘팬트리(pantry)’다. 서너 개 남짓한 선반에 물건을 수납하고,문 닫으면 모습이 은폐되는 바로 그 공간.

정 작가는 저 팬트리에 현대인 개개인의 숨기지 못하는 ‘욕망’이 집합된다고 본다.

당분과 탄수화물,카페인과 알코올,‘문명의 척도’라 불리는 소스부터 막 국제 배송된 아마존 익스프레스 박스는 개인의 삶에서 보여주는 욕망을 말해주지 않던가. 다이어터의 애용품인 ‘0Kcal’ 스리라차 소스는 집주인의 체중감량 욕망을 드러내고,하지만 그 옆의 아사히 드라이 맥주 6개 번들은 ‘그럼에도 참을 수 없는 한 모금’에의 식탐을 노출하는 것처럼.

“팬트리는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 같아요. 같은 물건이 위치한 팬트리여도 깔끔히 정리된 선반과 무질서한 선반이 그 사람의 다른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하고요.”

정 작가의 신작 ‘Pantry8’과 ‘Pantry7’은 이번 전시장에서 눈길이 간다.

동일한 팬트리의 동일한 사물들을 동일한 크기로 그린 두 작품이다. 그런데 ‘Pantry8’은 활짝 열린 개문 상태이고 ‘Pantry7’은 문이 3분의 2쯤 닫혔다. 팬트리의 닫힌 문엔 앙리 마티즈,앤디 워홀,파블로 피카소의 유명작이 그려진 엽서가 부착됐다.

공산품의 물질적 소비,예술에의 정신적 추종이 동시에 공존하는 묘한 이미지다.

‘Pantry8’(120x120cm). [학고재 갤러리]

‘Pantry7’(120x120cm). [학고재 갤러리]

‘각자의 생애주기’(100x100cm). [학고재 갤러리]

‘아침,크리스마스이브’(120x120cm). [학고재 갤러리] 정 작가는 “전시를 준비하며 ‘모순적 긴장감’을 형성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다른 작품인 ‘아침,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뉴욕타임스 신문이 나오는데 발행일이 12월 24일이에요. 마음이 들뜨기 쉬운 날인데 그저 사과 몇 조각으로 소박하게 아침을 해결하는 모습이에요. 또 ‘각자의 생애주기’란 작품에는 시들어가는 바나나 한 송이와 완전히 만개한 꽃다발,건강을 지키려 먹는 비타민 약통과 그리고 건강을 해칠 법한 아메리카노가 함께 그려졌어요. 식물도 사람도 피고 지는 주기가 다르잖아요. 정지된 사물 속에서 그런 긴장감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황홀경으로 다가올 회화 한 점도 눈에 띈다.

위스키 진열대를 그린 ‘Wating for Nobady’란 작품이다. 맥켈란 25년산,히비키 21년산,라가불린 25년산 등 세계 최고 명주 70여병이 3층짜리 선반에 빼곡하다. 정 작가는 “술병이 아니라 술병의 빈 공간을 봐달라”며 웃었다.

“전 술은 한 잔도 못 마시지만 지인 집에 가서 술병이 진열된 선반을 보면 라벨에 적힌 술 이름보다도 ‘그 술병이 얼마나 비었는지’를 봐요. 술병 속 빈 공간은 그 술병의 주인이 술을 마시면서 쓴 시간들의 합이고,그 선반엔 그 사람의 시간이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왜 전시 제목이 ‘초대 받고 싶지만 참석하고 싶진 않아요’일까.

“타인의 시선 안에 머무르고 싶은 ‘초대’와 그럼에도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기 어려워 ‘참석’을 못하는 두 마음이 늘 함께 해요. 그래도 이번 전시엔 저의 발끝이나 욕조의 은빛 부속품에 비친 제 자신이 등장해요. 사물들을 통해 혼자 있는 시간의 감정을 담고 싶었어요.”

1987년생 서울 출생인 정 작가는 이화여대 회화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2018년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또 받았다. 개인전 ‘플레이 스테이션’ ‘Self on the Shelf’,‘87년생 정수영’ ‘원 오디너리 데이’ ‘파라미타’ 등을 열었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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