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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 이후 재계 시나리오 어떻게 될까? [스페셜리포트]

2025-07-22 IDOPRESS

1. 중복상장 ‘저금통 → 골칫거리’

‘분할 → 스케일업’ 달라질 성장 공식

한국 증시에서만 유독 두드러지는 현상이 있다. 대기업 계열사 중복상장이다. ‘대기업 로고’ 파워에 투자자와 자금이 몰리고 이렇다 할 규제도 없던 탓이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한국 증시의 중복상장 비율은 18%. 미국(0.3%),일본(4.3%),중국(1.9%) 등과 비교하면 비정상적 수준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중복상장을 활용한 자금 조달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중복상장에 칼날을 드리운 탓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중복상장을 지적해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중복상장 기업의 신주를 모회사 주주에게 우선 배정하는 방식으로 중복상장을 규제할 방침이다. 현재 국회에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돼 있는데 다수가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신주배정 비율은 30%~70%까지 다양하다. 모회사 주주 배정 비율이 높을수록 기업공개(IPO)에 참여하는 일반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 몫은 줄어든다. 기업 입장에선 자금 조달 규모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다수 계열사 IPO를 준비하던 SK,LS그룹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SK그룹은 SK엔무브뿐 아니라 SK온·SK에코플랜트·SK플라즈마·SK팜테코 IPO를 추진해왔다. LS그룹도 에식스솔루션즈·LS MnM·LS EV코리아·LS이링크·LS파워솔루션 등이 IPO를 목표로 삼았다.

증권 업계는 ‘선택과 집중’ 행보를 예상한다. 일부 계열사 IPO에 초점을 맞출 것이란 분석이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 상장을 철회했다. SK그룹은 “자본 시장 분위기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바이오 계열사 SK플라즈마 IPO는 계속 추진 중이다. SK플라즈마는 최근 주요 증권사를 대상으로 IPO 주관사 선정을 위한 경쟁 프레젠테이션(PT)도 진행했다.

LS그룹은 우선순위 선정을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올해 초만 해도 LS파워솔루션과 LS EV코리아,LS이링크 등 최소 3곳의 계열사 IPO를 점쳤지만 현재는 감감무소식이다. 일각에선 LS그룹의 미국 계열사로 비교적 중복상장 시비를 피하기 수월할 것이란 분석을 받는 에식스솔루션즈가 우선순위에 올랐다고 평가한다. 한화그룹도 마찬가지다. 한화에너지 IPO 준비를 일단 멈추고 분위기 파악에 나선 모습이다.

중복상장이 힘들어지며 재계 성장 방식도 ‘외형 확대’에서 ‘똘똘한 계열사’ 중심으로 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업적 연관이 짙은 중복 사업 계열사를 통합해 비용은 절감하고 효율은 높이는 방식의 ‘스케일업’ 전략이다.

HD현대그룹은 건설기계 형제 계열사인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를 하나로 통합한다고 밝혔다. HD현대건설기계가 존속법인이 돼 HD현대인프라코어를 흡수합병하는 방식이다. 시장 반응은 긍정적이다. 이재광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그룹 내 동일 사업을 영위하는 2개 법인이 동시에 상장돼 발생할 수 있는 주주 간 이해 상충이 해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오롱그룹도 계열사간 합병을 선택했다. 코스피 상장사이자 건설업 기반인 코오롱글로벌에 골프·리조트·호텔 전문기업 MOD와 자산관리 전문기업 코오롱LSI를 흡수합병했다. 건설업은 업종 특성상 경기 변동성이 높은 편이다. 안정적인 경영 성과를 유지하기 어렵다. 이에 비주택 부문 사업을 합쳐 약점을 보완했다.

2. 최소한 방어권 있어야

포이즌필·황금주·차등의결권

재계에서는 개정 상법을 받아들이는 대신 반대급부로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을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8단체는 “경제계는 자본 시장 활성화와 공정한 시장 여건 조성이라는 법 개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사의 소송 방어 수단이 마련되지 못했다”며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을 촉구했다.

재계는 최소한 차등의결권(dual-class voting shares)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자나 대주주가 가진 주식에 일반 주주가 보유한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쿠팡이 미국 증시 상장을 결정한 배경이기도 하다. 미국은 차등의결권이 제대로 보장된 국가 중 하나다. 창업자 김범석 이사회 의장의 1주(클래스B)는 다른 주식 29주(클래스A)에 맞먹는 의결권을 가진다. 차등의결권은 외부 투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창업자 지분율이 쪼그라들어도 경영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일각에선 황금주(golden share) 얘기도 나온다. 황금주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차등의결권이다. 일종의 ‘거부권’으로 단 한 주만 가지고 있더라도 주주총회에서 결정난 사항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워낙 권리가 막강한 탓에 자본 시장에서도 황금주 도입을 두고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포이즌필(poison pill)도 눈여겨볼 만하다. 경영권 위협 행위가 발생할 경우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다. 경영권을 공격하는 측의 지분율을 희석시키는 방식으로 경영권 침탈을 저지할 수 있다.

당장 글로벌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 기업인 넷플릭스가 대표 사례다. 넷플릭스는 2012년 미국 헤지펀드 운용사인 칼 아이칸의 경영권 공격을 받았다. 이때 넷플릭스는 기존 주주들에게 특정 가격에 신주를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주주권리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7월 미국 항공사 사우스웨스트에어라인 이사회는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경영권 공격에 나서자 포이즌필을 발동,기존 주주가 시가보다 50% 낮은 가격에 주식을 매수할 수 있게 했다.

3. 소각?…차라리 팔고 없애자

자진 상폐·EB로 자사주 유동화

자사주 소각 의무화도 가시권에 들어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사주의 원칙적 소각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자사주를 취득 1년 이내 소각하도록 하고 스톡옵션 등 특별한 사유만 예외로 인정하는 게 골자다. 예외 사유의 경우 정기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에 일부 기업은 규제 강화를 피하는 ‘막차’를 타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은 교환사채(EB)를 활용한 자사주 유동화다. EB는 일종의 담보물 채권이다. 보유 중인 다른 기업의 유가증권이나 자기주식이 교환 대상이다. 채권자가 원하면 원금 대신 담보물로 교환할 수 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올해 6월 한 달 동안 공시된 EB 발행 건은 6건(태광산업·SK이노베이션·네온테크·모나용평·KG에코솔루션·바른손)이다. 이들 모두 자기주식을 교환 대상으로 삼았다. 시장 관계자들은 “자사주 의무 소각 법안이 통과되기 전 최대한 자사주를 활용해 돈을 끌어모으려는 행태”라고 분석했다.

다만 태광산업을 기점으로 자사주 EB가 논란의 중심에 서며 추가적인 자사주 EB 발행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태광산업은 지난 6월 자사주 전량(지분율 24.4%)을 담보로 EB 3186억원어치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2대 주주인 트러스트자산운용은 지분 희석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상법 위반이자 배임 행위라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도 태광산업의 EB 발행에 대해 “처분 상대방에 대한 중요한 누락이 있다”며 정정 명령을 결정했다. 결국 태광산업은 지난 7월 2일 관련 절차를 전면 중단했다.

이에 새롭게 떠오르는 행태는 ‘셀프 처분’이다. 자사주를 지배주주나 계열사에 매각하는 형태다. 소각이 의무화되기 전 자사주를 활용해 최대한 지배주주 지배력을 높이거나 유동화하겠다는 판단이다.

코스닥 상장사 솔본은 지난 7월 2일,계열사 테크하임에 자사주 167만9052주를 장외 처분했다. 같은 날 코스닥 상장사 진양제약의 자사주 처분 공시도 나왔다. 진양제약은 자사주 32만주를 총 20억4800만원에 최윤환 회장에게 넘겼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진양제약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더 나아가 자진 상장폐지를 선택하는 기업도 있다. 올해 자진 상폐를 위해 공개매수를 진행한 기업은 비올,신성통상,텔코웨어,한솔PNS 등 4곳이다. 자진 상폐를 위해서는 코스피 상장사의 경우 95%,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90% 이상 지분을 대주주가 확보해야 한다. 이 때문에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을 확보한 뒤 자진 상폐에 나서는 구조다. 다만 텔코웨어,한솔PNS는 공개매수 과정에서 응모 물량 부족으로 목표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다. 현재 가장 자진 상폐에 가까운 기업은 비올이다. 사모펀드 운용사 VIG파트너스는 비올의 최대주주 지분(34.76%)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뒤 지난 6월 18일부터 7월 7일까지 자진 상폐를 위한 지분 공개매수를 진행,약 48.8%의 지분을 확보했다. 기존 대주주 DMS로부터 취득하기로 한 지분을 더하면 지분율은 84%까지 오른다. VIG파트너스는 장내 상시매수를 통해 잔여 지분을 매입한다는 방침이다.

4. ‘백기사’ 확보 비상

기업끼리 새로운 연대 모색

‘3% 룰’의 확대 적용은 각 기업의 경영권 방어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대주주 의결권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우호 지분 확보의 중요성이 커지며 ‘백기사’를 찾는 움직임이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개정안이 본격 시행하면 단순한 투자 관계를 넘어 기업 간 주식 스왑(상호 간 주식을 교환해 우호 관계를 맺는 것)을 통한 전략적 ‘혈맹 관계’ 구축이 새로운 트렌드가 될 전망이다.

몇몇 자산운용사는 이미 백기사 역할을 자처하며 기업에 손을 내밀었다. 기업 입장에선 감사위원 선임이 불안해진 상황에서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지원은 매력적인 제안일 수 있다.

경영컨설팅 회사 사이먼쿠처코리아의 노정석 대표는 “자산운용사는 의결권을 행사해주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거나 다른 형태로 이익을 얻으려 할 것”이라며 “이는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도 새로운 투자처이자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어 앞으로 이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자산운용사 외 재계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다른 기업집단이 백기사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사업 분야에서 협력이 필요한 기업끼리 서로의 경영권을 방어해주기 위해 주식을 교환하거나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단순한 재무 지원을 넘어,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상호 간 사업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경영권 방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셈이다. 이런 형태의 ‘연합 전선’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기업 환경에서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 경영권 분쟁에서 백기사가 핵심 역할을 한 사례는 많다. 최근 한진칼 경영권 분쟁이 그랬다. 조원태 회장 측은 델타항공 등 우호 지분과 함께 이마트,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현대차 등의 기업이 출자한 사모펀드를 백기사로 확보하며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단순 투자를 넘어 한진그룹과 사업상 협력 관계에 있거나 오너 일가와 친분이 있는 기업들로 구성돼 이목을 끌었다. 앞으로 경영권 방어를 위한 다각적인 백기사 연대가 더욱 빈번하게 나타날 것을 시사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경영권 분쟁에서 백기사가 핵심 역할을 한 사례는 많다 .

한진칼도 그중 하나다. 사진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항공사진기자단) 5. 대기업 자구책 마련

컴플라이언스 강화·IR 확대

이번 상법 개정으로 각 대기업은 ‘경영 판단이 곧 법적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대안으로 컴플라이언스 시스템(기업이 법규를 준수하고 윤리 경영을 실천하도록 하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단순히 사후 소송을 피하는 걸 넘어,경영 판단 자체가 법적 기준에 부합하게 대비하기 위함이다.

특히 계열사 간 거래,자금 조달,자사주 활용 등 이해 충돌 가능성이 큰 사안에 대해선 내부 감사만으론 부족하다는 분위기가 다수다. 그래서 외부 법률 자문을 병행해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려다 보니 중대형 로펌은 때아닌 법률 자문 ‘특수’를 맞고 있다.

더불어 주주와 미연에 분쟁을 방지하고자 IR(기업설명회) 활동을 더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정기 IR을 넘어,소액 주주 간담회,온라인 소통 채널 강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주주 친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최근 파마리서치가 인적분할 관련 논란이 일자,소액주주 대상 기업설명회를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이제 IR은 단순한 실적 발표를 넘어 투명한 정보 공개,적극적인 소통으로 소액 주주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 잠재적인 경영권 분쟁 위험을 낮추는 장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명순영·박수호·최창원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8호 (2025.07.16~07.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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