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3 HaiPress
“당신이 병으로 고생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하라,이런 약을 쓰라 말할 것입니다. 건강이 나빠지면 꼭 좋은 의사를 찾아가십시오. 믿을 만한 의사를 찾아가 진단을 받고 약을 써야 합니다.”
1930년 10월 한 언론사 지면에 눈에 띄는 광고가 실렸다. 당시 의약품 광고는 다른 약과는 비교 불가라거나 만병통치라는 자극적이면서 과도한 표현이 주를 이루던 터라 이 같은 광고는 파격에 가까웠다. 광고에서조차 단순히 약 판매뿐 아니라 의학 지식 개선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했던 유한양행의 창업자 고(故) 유일한 박사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1926년 유한양행이 설립된 지 단 4년 만의 일이었다.
유한양행 창업자 고(故) 유일한 박사. [유한양행 제공]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신념에 따라 유일한 박사는 1969년 전문경영인에게 사장직을 물려줬고 유한양행에는 소유와 경영 분리 기조가 자리를 잡았다.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도 같은 직무를 두 번까지만 맡을 수 있도록 하는 불문율도 있다. 자리에 연연하기 보다는 각자의 위치에서 회사와 사회를 위한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창업주 정신의 산물인 셈이다.
유한양행은 최근 폐암 치료제 ‘렉라자’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는 쾌거를 올렸다. 미국 시장을 뚫은 첫 국산 항암제라는 새 기록도 썼다.
유한양행 렉라자<사진=유한양행> 렉라자의 개발 과정은 자타 공인 ‘착한 기업’에 걸맞았다. 국내 바이오텍으로부터 들여온 신약 후보물질에 대해 연구를 진행해 그 결과를 다시 글로벌 빅파마에 기술이전해 글로벌 혁신 신약으로서 완성도를 높이고 과실을 나눴다. 미국 진출에 앞서 렉라자는 국내에서 1차 치료제로 허가 받은 뒤 급여 전까지 환자들에 무상 지원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국민 건강을 지켜내겠다는 따뜻한 마음은 100년 뒤 유한양행이 전 세계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밑거름이 됐다. 유한양행은 목표를 뚝심 있게 밀어붙이되 방법에 있어서는 어느 기업보다 유연했다. 제2·제3의 렉라자 발굴이라는 과제를 받아든 국내 제약업계가 현 시점에서 유한양행의 뚝심을 되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김지희 과학기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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